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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아빠가 선물해 준 Trash Talking

by 순박한근로자 202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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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픽션(허구)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AND1의 흥망성쇠」 다큐를 봤다.
2000년대 초반 한 때, AND1이라는 브랜드가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었지만, 한국에선 이 브랜드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브랜드를 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아버지는 미국 출장을 가셨었고 선물을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셨었다.
당시 나는 농구를 좋아했었고, 미국이면 NBA니까 농구가 연상됐었다. 비싼 걸 사달라고 할 배짱은 없었고, 티셔츠 정도면 서로 부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농구티셔츠 같은 거' 하나 사달라고 했었다.

나이키 같은 익숙한 브랜드를 예상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인자하게 웃으며 건내 준 티셔츠는 AND 1이었다. 생소한 브랜드명에 얼굴도 없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고, 해석하기 어려운 영어가 잔뜩 쓰여 있었다.
미국에서 이제 막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 AND1을 한국에서 알아 보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한국에서 좀 더 인지도 높은 캐릭터 '펩시맨' 티셔츠로 취급을 받게 됐었다.

'해석하기 어려웠던 영어'에 대해서는 오늘 다큐를 보면서 이제야 이해가 됐던 것이, AND1은 트래쉬 토킹(Trash Talking)으로 도발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문구들을 티셔츠에 넣으면서 인기를 끌었었다고 한다. 당시의 내 티셔츠의 문구들도 더듬더듬 읽어보면... '나를 따라올 수 있다면... 너의... 발목을... 분질러 버리겠다...'와 비슷한 문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트래쉬 토킹의 한 종류였던 것 같다.

그 티셔츠를 선물 받고나서 불과 몇 년 뒤에 AND1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거짓말처럼 금세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AND1이란 기업의 흥망성쇠도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론 농구의 본고장에서 인기 있던 브랜드를 본인도 모르게 먼저 접했었고, 한참 뒤인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게 재밌게 느껴진다. 트래쉬토킹 티셔츠를 미성년 아들 선물로 주셨던 아버지가 새삼 힙하게 느껴져 옛 기억이 새롭게 느껴지고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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