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82년생 김지영_조남주(누구에겐 쉽게 읽히고 누구에겐 어렵게 읽히는)
원래 독서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보니 제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친한 친구(남자)가 추천을 했었지만 그 친구는 독서광이었고, 가끔씩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책이었기에 왠지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특별한 의견을 가져야만 하는것은 아닐까(또는 읽고나서도 소신있는 의견을 갖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욕먹을 일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선뜻 책에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사랑하는 82년생 여성이 이 책을 선물받게 됐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보더니 이틀만에 다 읽고나서 저에게 추천해주어 읽게 되었습니다. 결코 밝은 이야기는 아닐거라는게 충분히 암시되는 어두운 느낌의 표지였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받아오고 바로 읽었던건 아닙니다.
잠시 책상 위에 뒀던 이 책을 가족구성원인 또 다른 82년생 여성이 먼저 읽게 됐고,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는 말과 함께 다시 돌려받고 그제서야 저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 제목의 '82년생'은 그 근처 세대를 뜻하는 말이겠지만 막상 내 주위에 정확히 82년생인 여성이 이렇게 많았을 줄은 몰랐기에 책을 읽는것이 사명감처럼 느껴지면서 더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마치 이 책을 읽은 뒤로는 그들을 더 잘 이해해야만 할것 같아서 느낀 부담인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가볍고 글자는 적었으며 내용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소설을 보는듯 크게 복잡하지 않은 일상의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선 전혀 쉽게 읽히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더 읽기 어려웠으며 진도가 잘 안나갔습니다.
책에서는 82년생 김지영씨가 어렸을때부터 현재까지 쭈욱 자연스럽게 받아온 불평등한 현상들을 무미건조하게 전달합니다. 82년생 여성 김지영은 그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과 억울함을 느끼는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워낙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상황 묘사는 자칫 그런 불평등하고 억울한 현상이 별거 아닌것처럼 느껴지게 서술합니다. 그리고 82년생과 같은 세대지만 남성인 저로서는 내가 받아온 불평등이 아니었기에 단조로운 상황묘사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버리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부분은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그 억울함을 다시 이해하려 애쓰며 다시 읽었고, 그러다보니 읽는게 참 힘들었습니다. 여성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당한 불평등이었고 그게 실제 현실이었기에 별다른 생각없이도 술술 읽혔던 것이고, 남성입장에선 당하는 입장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는 입장이었기에 이해하려는 '노력'이 특히 필요했던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90년대 초반에 MBC에서 방영했던 주말드라마 '아들과딸'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의 흉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던 드라마라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란성쌍둥이인데 아들은 이름도 귀한 '귀남이', 딸은 이름도 후진 '후남이'.
드라마에서는 항상 아들은 이유없이 대접받고 딸은 이유없이 홀대받습니다.
대학입시 시험을 같이 치고도 우수한 성적을 낸 딸은 시험을 쳤다는 이유만으로 뒤지게 맞고 그 좋은 성적으로도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고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아들은 시험을 망치고 와서도 대접받으며 재수생활을 하게 됩니다. 딸은 홀대에 상처받고 아들은 아들대로 본인 능력이상의 기대를 강요받으며열폭찌질이가 됩니다.(당시 최수종이 열폭찌질이 아들연기를 너무 잘해서 오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드라마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같은 세대에서 이미 불평등을 계속 겪어왔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참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82년생들은 지금은 대부분 출산으로 인해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돼있는 상황이고 경력단절에 대한 대책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보니, 비록 출산이 자연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불평등이 해소됐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것은 사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지 않고 각자의 보편적 특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족의 일원인 어머니,누이, 그리고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여성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한 방법으로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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